업계의 아이러니 - 어쩌라고!!!


지난해 6월, 졸업논문 쓰기 싫어 인턴으로 들어왔다가 사장님께 멋지게 낚여서 굴러다닌지 1년이 지났습니다. 대충 일하면서 느낀 IT 업계의 아이러니를 정리해봅니다. - 근데 정리해놓고 보니 IT업계 한정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...

1. 정말 최악의 기획도, 최선의 결과물보다 그럴싸해보인다. 
엄밀하게 말하자면, 최선의 기획이란건 실제 결과물과 거의 동일한게 정상이지만요. 안좋은 기획일수록 뭔가 거창하고 거룩(!)한게 멋져보이더군요. 심지어 개발자들이 한번 슥 읽어보고 '이딴게 팔릴 리가 없잖아!!!'라고 외치며 한목소리로 반대했던 프로젝트조차도, 기본 모토는 굉장히 좋았습니다. 그 모토에서 나온 기획이 시망이라 그렇지.

2. 뻘밭을 구르며 박박 긁어대서 어떻게든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물도, 마케팅 팀의 입에만 걸리면 외계인 고문해서 뽑아낸 미래의 신기술이 되어있다. - 속칭, 사기치지마 이 구라쟁이야!
그래서 이런 프리젠테이션에 기술 지원 어쩌구 하는 명목으로 따라갔다간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정신이 퇴갤하는 지경까지 이르기 십상입니다. 프리젠테이션을 듣다보면...
(아 슈바, 그거 아직 구현 못한 기능인데...)
(아 슈바, 그거 내 컴퓨터에선 잘 돌아가더만 다른데서는 안되네?)
(아 슈바, 그거 신기술이 아니라요, 여기저기서 코드 긁어다가 짬뽕해서 대충 만든 프로토타입인데..)
이런 영혼의 외침이 혀끝까지 올라와서 맴돌다 사라집니다.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그 프리젠테이션이 당첨!되면 이제 그 과장과 구라를 실제로 만들기 위해 뺑이를 쳐야 합니다. 으흐흐(..)

3. 테스트할때는 어디서나 잘 돌아가던 비까번쩍하고 멋져보이던 기능은, 항상 시연할 때만 말썽을 일으킨다. 발표 10분전에 디버깅해서 땜빵했다고 안심한 기능 또한, 항상 시연할때 문제가 생긴다.
뭐 사과교도들의 신인 잡스 횽마저도 이런 사건을 접했으니 별로 할 말은 없지요. 분명 발표 전에 테스트 수백번에 리허설 수십번에선 말짱했을겁니다. 윈도우 98 발표할때 PnP 폼나게 소개 좀 해보려다 블루스크린에 KO당한 게이츠 횽은 이미 이 분야에선 전설이고(...)

4. 고객은, 졸라 설계도 열심히 하고 코딩도 빡세게 하고 테스트도 빵빵하게 돌려봐서 잘 돌아가는게 확인된 부분엔 관심이 없다. 시간에 쫓겨 얼기설기 만드는 바람에 실행 성공 확률이 반반인 부분에 더 관심을 보인다.
...이건 뭐 복불복도 아니고. 이런 상황이 3번 상황과 겹치면 대략 지옥의 헬이지요. 고객의 찌르기에 맞서 이런 저런 대응책을 머리 굴려 강구해놓은 곳은 '아 그건 그냥 대충 넘어가죠?' 하고 넘어간 후 맨 마지막 두어페이지에 분량 맞추기로 대충 넣은 부분에 미친듯한 태클이...

5. [아 진짜 이건 우리가 생각해도 굉장한 것 같아! 꼭 만들어야되!] 라고 기획해서 넣은건 그냥 개무시당하지만, [앆ㄲㄲㄲㄲ이거 진짜 넣을꺼냒ㄲㄲㄲㄲ] 이러면서 낄낄거리며 장난으로 넣은건 이상하게도 호평받는다.
이쯤 되면 대충 해탈의 경지. 전략이고 기획이고 시장 분석이고 필요 없어! 그냥 감으로 승부! 좋아서 만드는게 더 결과가 좋은거다! 라고 마무리되면 좋겠지만... 한두푼 걸린 일도 아닌 프로젝트를 그렇게 할 수도 없죠. 이건 대략 난감.

by 엘레시엘 | 2010/06/20 01:32 | 단상 | 트랙백 | 덧글(18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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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ommented by Zannah at 2010/06/20 02:17
왜..왠지 IT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전반의 공통점인 것 같은데요.;;
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10/06/21 22:28
...써놓고 보니 저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.
친구 모 군에게 보여주니... '...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' 라는 답변이.
Commented by Mjuzik at 2010/06/20 02:18
가슴아픈...
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10/06/21 22:28
가슴이 찢어집니다. 특히나 열심히 한 부분은 당연하게 넘어가버릴 때 ㅠㅠ
Commented by 달산 at 2010/06/20 09:33
테그가 왜 이래;;;;;;;;;;;;;;;;;;;;;;;; 내용이야 울고 웃으며 보는 건데 태그가;;;;
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10/06/21 22:29
사는게 다 그렇다지만...저걸 연타로 카운터 맞으면 절로 안구에 습기가 찬다우;;
Commented by 아크리트 at 2010/06/20 10:28
세상의 진리
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10/06/21 22:31
진리임까. 아마도 직장 다니는 서민층의 진리가 아닐까 함. ㅡㅜ
Commented by ArchDuke at 2010/06/20 12:24
아 눈물......ㅠㅠ
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10/06/21 22:32
....ㅠㅠ
Commented by 원삼장 at 2010/06/20 14:36
으아... 세상의 규칙이 하나하나 오르는 기분;;;
무엇보다 태그에서 눈에서 뭔가 습기가;;;
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10/06/21 22:37
혼의 외침이랄까 뭐 그런거죠. 여러가지로 =ㅂ=
Commented by 남자의로망 at 2010/06/20 16:45
만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

그보다 고객이 원하는 걸 잘 파악하는 개발자가 진정한 실력자인 것이겠죠 [..]

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10/06/21 22:38
그런데 문제는 고객도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거죠;;; 일단 뭐가 눈에 보여야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반응이 나와서.

잡스 횽님의 현실 왜곡장을 구사할 수만 있다면 닥치고 만들기만 해도 될텐데, 적어도 한국내엔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? 안될꺼에요 우린...
Commented by NAKO at 2010/06/21 22:35
오오 그것이 인생
저도 저희회사 게임중에 이거 이제 포기하고 딴거 만들지? 하고싶은 작품도 있는데 꾸역 꾸역 오픈하고 시망(....)
차기작도 이야기 들어보면 아니 저건 꼭 들어가야되는데 싶었던 부분은 빼겠다고 공언(....)
기획팀 이었으면 사표쓰고 나왔을 정도임(....)
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10/06/21 22:40
언제 접어야 할지를 파악 못하면 더 큰 손해를 입기 마련인데...꾸역꾸역 만들어놓은거 접는것도 무지 아깝죠 ㅠㅠ 그거 적당한때 접을 수 있는 것도 능력.

이도 저도 안되면 성공할 때까지 꾸역꾸역 만든다! 라는 답도 있는데, 이런건 진짜 4N 정도 아니면 못하는 짓이고...
Commented by 로퍼 at 2010/06/24 14:05
그래서 역시 믿을건 운밖에..
Commented by 몽구스 at 2010/09/02 13:06
"앆ㄲㄲㄲㄲ이거 진짜 넣을꺼냒ㄲㄲㄲㄲ"

몇가지가 머리에 언뜻 스쳐지나갑니다 ㅋㅋㅋ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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